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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 음료처럼 술술 마시다간 '대사증후군' 위험
'술은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만 마신다.' 국내 한 대기업이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77.4%가 선택한 항목이다. 취미 생활 등 즐거움을 추구하는 활동에서 건강도 함께 챙기는 '헬시 플레저' 문화가 술 소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헬시 플레저와 함께 급부상한 주종은 '하이볼'이다. 인기 주류 항목에서 4명 중 1명인 25.6%가 하이볼을 꼽아 1위를 차지했다.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음료, 시럽 등을 섞어 만들기 때문에 과일 주스나 얼그레이 같은 차 맛을 낼 수 있고 도수도 낮다. 편의점 캔 제품 기준 평균 도수는 6~9도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하이볼은 양주나 소주보다 건강에 부담이 덜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방심하다간 대사증후군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하이볼 마시면 알코올 '빨리∙많이' 흡수하게 되는 이유
하이볼 주재료인 탄산수와 리큐르 등에는 액상과당이 들어있다. 액상과당을 섭취하면 다른 식품을 섭취할 때와 달리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이 나오지 않는다. 많이 섭취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과당이 들어간 주류는 과음하기 쉽다.
식도를 넘어 위로 들어온 하이볼 속에는 탄산 가스가 들어있다. 탄산 가스가 위벽을 팽창시키면 위에서 소장으로 음식물이 넘어가는 것을 조절하는 '유문괄약근'이 일찍 열린다. 따라서 탄산 없는 술을 마실 때보다 알코올이 소장으로 빨리 넘어가게 된다. 소장은 위보다 알코올을 더 잘 흡수하는 기관이다. 소장으로 술이 빨리 넘어갈수록 알코올 분해 속도가 흡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결국, 혈중알코올농도가 급격히 올라가 더 빨리 취하게 된다.
이렇게 음주로 알코올을 다량 흡수하게 되면 하이볼이 아무리 저도수주라도 몸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알코올이 간에 미치는 영향은 술 도수가 아닌 섭취한 알코올 총량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이볼을 과음하면 독한 술을 조금 마시는 것보다 오히려 간에 해롭다. 특히, 공장제가 아닌 수제 하이볼은 10~20도 정도이므로 15도짜리 하이볼 한 잔(300ml)을 섭취하면 40도짜리 양주 한 샷(44ml)을 마신 것보다 알코올을 2.6배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
액상과당, 통풍∙염증∙지방간 유발 위험 높인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액상과당이다. 본래 과당이란 과일 속에 들어있는 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액상과당은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과당과 포도당을 섞어 만드는 인공 과당이다. 따라서 액상과당을 많이 섭취하면 포도당이 원인이 되는 '혈당 스파이크'와 '과당 스파이크'가 함께 온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주현 교수는 "혈당 스파이크는 인슐린 반응을 증가시키고 과당 스파이크는 간의 과부하를 야기해 대사적 부담을 높인다"며 "이는 내장지방 축적과 대사증후군, 지방간, 이상지질혈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액상과당은 천연 과당에 비해 흡수 속도가 빠르다. 천연 과당을 섭취할 때는 과일 속 식이섬유가 당 흡수 속도를 늦춰주지만, 액상과당에는 식이섬유가 없기 때문이다. 흡수된 당은 혈액을 떠돌아다니다가 단백질이나 아미노산을 만나면 엉겨 붙는다. 이후 정상 세포 구조를 파괴하거나 세포 기능 이상을 유발한다. 이 과정에서 '최종 당화 독소'라는 부산물이 나온다. 이 독소는 신체 다양한 부위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노화를 촉진한다.
또한 액상과당은 혈액 속 요산 농도를 높이기도 한다. 혈중 요산이 남아돌다가 관절에 침착하면 심한 통증과 염증을 유발한다. 이것이 통풍이다. 통풍은 고혈압, 동맥경화, 심장병 같은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알코올 적정 섭취량 지켜야..."단백질·채소 안주 곁들이면 도움 돼"
조금이라도 건강에 덜 부담되는 방향으로 하이볼을 마시려면 적정량부터 알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순수 알코올 1일 섭취량은 남성 40g, 여성 20g 미만이다. 이를 하이볼에 대입하면 남성은 15도짜리 수제 하이볼 300㎖ 한 잔 정도 분량을 마시는 것이 적당하다. 여성도 동일하게 300㎖ 한 잔으로 계산하면 7도짜리 공장제 캔 하이볼을 마실 수 있다.
술만 마시지 않고 안주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알코올 흡수 속도를 늦춰주기 때문이다. 건강한 성인은 보통 음주 후 30분~1시간 이내에 대부분의 알코올을 흡수한다. 그러나 음식물과 함께 술을 마시면 4~6시간 정도로 흡수 소요 시간이 늘어난다. 박주현 교수는 "곁들이는 음식을 선택할 때 밀가루나 백미가 주재료인 정제 탄수화물 음식은 피하고 단백질, 채소 등으로 구성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또한, 충분한 수분 섭취도 필요하다. 술을 마신 후 몸속에서 알코올이 분해되기 시작하면 숙취를 일으키는 원인이자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몸에 쌓이는데, 음주 중 물을 자주 마셔주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몸 밖으로 배출된다. 뿐만 아니라 알코올도 더 잘 분해되므로 술을 한 잔 마실 때마다 물도 두 잔 이상 챙겨 마시면 도움이 된다.
도움말 = 박주현 교수(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